산티아고 순례,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나. 그러면 떠나라! 순례면 어떻고 여행이면 어떤가. 난 가톨릭 신자로 두 번의 순례를 완주했다. 두 아들과 함께.
산티아고 순례가 뭐길래
예수님의 제자 12 사도 중 한 명인 야고보가 묻혀 있는 스페인 북서쪽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약 800km를 순례하는 길이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산티아고(Santiago)는 스페인어로 '성 야고보'를 뜻한다. 순례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Camino Frances(프랑스길), Via de la plata(스페인 은의 길), Camino Portuguese(포르투갈 길) 등. 하지만 대부분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800km를 걸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향해 걷는 일명 프랑스 길을 순례한다. 완주까지는 약 40일 정도.
산티아고 순례 비용
산티아고 순례의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산티아고 순례 준비는 신발과 배낭으로 시작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큰돈이 들어가는 항공권, 숙소, 식비 등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터. 항공권 예약은 3개월 전부터 모니터링한다. 이즈음부터 할인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1~2곳 경유하는 걸로. 단 중국항공의 사건사고는 유명해 피하면 좋을 듯하다. 나는 카타르항공을 이용했다. 인천공항 출발하여 카타르 도하를 경유, 프랑스 드골공항 도착 편도 70만 원. 요즘은 쉽지 않은 듯. 알베르게 하루 5~10유로. 식비는 가끔 레스토랑에서 먹고 대부분 인근의 마트에서 샌드위치, 과일 등으로 해결하면 비용도 절약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은 아직도 산티아고 순례는 빈민 체험이었다고 한다. 경비를 너무 아낀 듯. 항공권 예약(click)
준비물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하루 10시간씩 매일 걷는다. 무릎관절이 나가고 발목이 틀어져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꽤 있다. 다 나을 때까지 며칠씩 알베르게에 머무르는 사람 또한 많다. 몸이 약한 것을 떠나 우선 배낭의 무게를 줄여야 한다. 어떻게 줄여야 할까. 걷다 보면 깔끔할 필요도 없다. 아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남들 신경 쓰이는 건 사치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눈앞의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끝없는 들판을 걸어야 한다. 우선 머리를 짧게 자른다. 올인원 샴푸 하나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해결 가능하다. 크림은 니베아. 선크림 하나. 여성이라면 립스틱 추가. 양말 한 개, 판초우의 그리고 슬리퍼, 베드버그 약 등. 이렇게 해야 배낭 무게가 10kg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이 더 있을 터. 3~4일마다 도시를 지날 때 상점에 들러 필요한 것은 그때그때 충당하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 코스 및 길이
여러 코스가 있지만 세 가지만 소개한다.
▷프랑스 길 (Camino Frances)
산티아고 순례길의 시그니처라 할 수 있는 코스로 프랑스 생장에서 출발하여 약 800km 거리다. 순례길이라는 게 대부분 힘들고 지루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하지만 첫 날 만나게 되는 피레네 산맥은 매우 위험하다. 특히 눈이 올 땐 사망사고도 종종 일어난다고. 울창한 숲과 계곡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끝없는 평야 등을 황홀하게 보고 느낄 수 있다. 파리에서 생장까지는 버스도 있지만 TGV 강추. 여기(click)를 참조하시라.
▷ 스페인 은의 길 (Via de la plata)
스페인 남부 세비아에서 시작되는 길로 스페인 남북을 횡단하기 때문에 스페인의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1,000km 정도의 거리다. 프랑스 길에 비해 한국인이 많지 않아 조용한 분위기에서 순례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포르투갈 길 (Camino Portuguese)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출발하여 제2의 도시인 포르투를 지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는 약 630km의 거리다. 주로 바닷길을 걸으며 소박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스페인보다는 약간 저렴한 물가로 약간의 비용을 절약할 수도 있다. 프랑스 길 다음으로 많이 이용하는 순례길이다.
숙소
일반적인 순례자 숙소를 알베르게(Albergue)라 하고, 발음이 좀 그렇지만 무니시팔(municipal)은 공립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저렴한 대신 사립에 비해 시설이 좀 떨어진다. 공립은 예약을 받지 않아 일찍 도착하면 잡을 수 있다. 또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다. 크리덴시알(순례자 여권) 소지자만 이용할 수 있다. 공립은 하루에 5~10유로 정도로 사립보단 저렴한 가격이다. 사립은 15~20유로. 공립 숙소를 못 잡았을 때만 이용했다. 알베르게는 한 방에 보통 2~10명 정도로 2층짜리 병원침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화장실과 욕실, 주방은 공용. 숙소정보(click)
크리덴시알(순례자 여권)
순례자들의 여권으로 스탬프를 찍을 수 있어 완주했음을 증명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 굳이 완주증명서가 필요할까 하지만 순례길을 걸어보시라. 목숨을 건다. 순례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완주증명서를 보고 있자면 그렇게 흐뭇할 수가 없다. 또 이게 있어야 알베르게를 활용할 수 있다. 2유로의 발급 비용이 들어가고 생장을 비롯한 주요 여행지에서만 발급이 가능하다. 한국에서 미리 발급해갈 수도 있다.
언제 가면 좋을까
순례다. 야고보 성인의 고통스러운 선교과정을 느껴보고 은총을 받고자 걷는 게 아닌가. 고통을 즐기자. 하지만 그게 또 그런 게 아니다. 이왕이면 좋은 계절에 가고 싶지 않나. 한 여름 들판을 걸을 때 가장 필요한 건 눈을 제외한 머리를 둘러쌀 수 있는 그 무엇이다. 워머, 모자, 수건, 얇은 옷 아무거나 좋다. 그만큼 햇빛이 강하다는 말이다. 그렇지만 습하지 않아 그늘은 시원하다. 어찌하랴 순례길의 들판엔 그늘이 없다. 무서울 정도로 햇빛이 강하다. 순례 적정 시기는 5~6월이 좋겠다. 당연히 이 시기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겨울을 피한 금빛 들판의 9~10월이 순례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될 것이다. 7월 25일 대성당에서 열리는 야고보 축제에 맞춰가기도.
산티아고 순례길, 이것만은 꼭 챙기자
순례길을 걷기 위해선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 아니 필요해도 가져갈 수 없다. 40일 동안 내가 짊어지고 다녀야 하니까.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는 여행자에겐 익숙지 않은 게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많은 짐을 챙겨가지만 2~3일만 걸어보라. 순례길 여기저기 주저앉아 배낭 열고 짐 버리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이것만은 꼭 챙기자.
① 여행자 보험. 순례 도중 별의별 일이 다 생긴다. 도난이나 병원을 이용할 경우 여행자 보험은 필수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편안한 마음으로 갈 수 있다.
② 슬리퍼. 순례는 보통 새벽에 출발해 오후 3시 정도까지 걷는다. 내 경우에 그랬다. 숙소에 도착해 휴식을 취할 때 고생한 내 발에 보상을 주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하다.
③ 베드 버그 약. 침대 시트에 베드버그가 의외로 많다. 충분한 휴식을 취하지 못한 다음날 발걸음은 천근만근. 하루에 보통 20~30km는 걸어야 하는데.
정리하면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과정이다. 배낭을 한 번 꾸려보시라. 필요한 걸 뺀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하물며 우리 마음속에 있는 불필요한 욕심을 내려놓는 게 가능할까. 비록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금은 순례하는 마음으로 길을 걸어보았으면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올레길과 동해안의 해파랑길같이 멋진 길이 있지 않은가. 또 각 도시마다 둘레길도 있는데 굳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톨릭 신자로서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